Bon Voyage/Europa 2013. 1. 18. 22:22

006. Good Old Arsenal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바로 지하철을 탔다.

왜? 당연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아스날의 홈구장에 가려고.


 지하철을 탄지 얼마되지 않아 아스날 역에 내렸다.

조금 허름해보이는 동네-나중에 알았지만 이 지역이 그렇게 부촌은 아니라고 한다. 첼시 홈구장인 스탠포드 브릿지 근처는 부촌이라고 한다.-에 도착해서 친절하게 붙어있는 이정표대로 따라가니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비시즌이니 당연히 매표소는 모두 닫은 상태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구장에 같이 붙어있는 매장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고 한다. 일단 매장부터 찾았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매장을 찾아 길을 걷는데 길거리를 쓸고 있는 청소부는 동양인 계열(중국계 같았다), 매장 안에서 서서하는 일, 그러니까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매장 안에 관리하고 그러는 직원은 흑인이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 그러니까 매장 안쪽에서 데스크 워크를 하고 있는 직원은 백인이다. 그냥 우연의 일치인거 같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아무튼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뭘 도와드릴까요 물어보길래 투어 때문에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직원이 투어 관련 담당직원이 있는 책상으로 데려다줬다. 담당직원은 요금은 15파운드이고 오후 1시에 남문 입구로 오라고 했다. 당시 15파운드가 아니라 100파운드라도 지를 태세였던 나는 바로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때 예약한 시간은 오전 10시다. 요컨대 3시간 동안 이역만리에서 멍때리게 생긴 판이다. 그리고 아스날 홈구장에 간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주위에 뭐가 있는지 어떤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난감했다.


 일단 구장 밖이나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겉모습이다.


 아스날 팬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건설해서 쓰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을 홈구장을 삼고있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26,000석~28,000석을 가진 구장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지 좀 되기도 했고 관객을 더 많이 받아야겠다 싶어서 새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은 것이다. 아랍쪽 항공사인 에미레이츠 항공에서 구장 스폰서를 해줘서 최소한 2022년까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릴 것이다. 그 이후론 애쉬버튼 그로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겠지.


 구장을 한바퀴 돌고나서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를 가보기로 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기념이 될만한 조그마한 부분만 남겨두고 철거되었으며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서 분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있다.


 이제 뭘하나 고민하다가 아까 구장을 한바퀴 돌때 뭔가 다른 건물이 있었던걸 떠올리고 찾아가보았다. 찾아가보니 구단 박물관이라고 한다. 원래 입장료가 5, 6파운드 정도 하는데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개장 시간을 보니 11시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다시 구장 주위를 돌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스낵바가 있어서 뭐 파나 봤는데 츄러스, 햄버거....뭐 어디가나 비슷한 거 같았다. 물론 스낵바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누가 이럴때 장사하겠나.


 잠시 후 11시가 되고 구단 박물관에 들어갔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1913년에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최초로 벌어졌던 경기.


아스날의 옛날 모습을 담은 사진


과거 아스날의 유니폼과 당시의 축구장비들


아까 것보다 최근의 유니폼


하이버리 구장의 조감도로 추정된다.


아스날의 주축이었던 앙리와 비에이라가 있었던 프랑스 국대가 월드컵 우승했을때 관련 물품


그렇다고 한다.


아스날이 타온 트로피의 일부. 아 챔스 트로피가 없어....엉엉


아스날의 각종 최초 기록들


아스날의 하이버리 스타디움 마지막 경기 알림판. 위의 센터스팟 잔디가 이 경기의 잔디였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의 센터스팟(센터라인 가운데에 있는 경기가 시작되는 지점)


과거 아스날의 로고. 아까 위에 유니폼 중에 이 로고가 박힌 유니폼이 있다.


 이렇게 당시로선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그렇게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슬슬 점심을 먹어도 될 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겪은 아찔한 감자튀김의 추억때문에 뭘 먹을까 고민했다. 일단 밖에 나가보니 케밥집이 있길래 거기로 가봤다. 그땐 케밥이 뭔지 잘 몰랐다. 아무튼 먹을꺼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케밥을 사서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아서 먹었다.


내 유럽여행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케밥. 언젠가 이 케밥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 이번껀 좀 괜찮네 야채도 많고 고기도 있고 탄수화물도 있고...그러면서 제법 큰 케밥을 먹었다. 그리고 공원을 조금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시계가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쪽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문에 가보니 대충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주 어려보이는 꼬마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 대부분이 얘들 사이즈의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한 클럽을 좋아하고 찾아오고 각종 물건들도 사고 경기를 보러 오고 그런다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그 클럽을,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일이다.


 가이드가 나눠주는 투어 신청자임을 증명하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VIP를 위한 관중석, 구장 현관, 선수들의 샤워실과 안마실, 드레싱 룸, 경기 중 대기 선수들이 앉는 벤치, 프레스 룸 등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설명했다.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각종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설명도 자세히 해주고 사진 찍을 시간도 충분히 주는 등 팬 서비스에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당연한 걸 못하는 곳이 오죽 많아야지.


구장 정문의 로고




구장 내부 모습. 잔디 좋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자리였던거 같다. 




높으신 분들 자리에서 찍은 경기장 사진


선수들이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다는게 신기했다.



2004년 10월 28일에 묻은 아스날 타임캡슐이라고 한다.



아스날이 세운 리그 49경기 무패기록. 아마 맨유가 깼었던거 같은데. 루니가...

이땐 진짜 잘나갔는데...





선수들 락커룸 바로 앞에 있는 공간. 선수들을 위한 관리 공간(씻고 마사지 받고...)이라고 한다.






라커룸이다. 가이드가 거기가 선수들이 앉는 자리니 앉아서 안내를 들어보라고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저 사진을 찍고 있을때 아마 앙리의 바르샤 이적이 결정되었던걸로 안다. 아아.......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오는 통로다.

그 통로에서 경기장으로 나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경기장의 모습이다.













그라운드 안에서 찍은 사진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잔디 안엔 못들어가게 되어있다.

살짝 손만 뻗어 잔디를 만져보니 엄청 부드러웠다.





프레스룸과 그 바깥의 모습이다. 기자들을 위한 책상도 한 켠에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축구 전술의 변천사 중 일부를 알 수 있는 사진 한 장


 이렇게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가이드가 출구라면서 안내한 곳은 가보니 아까 투어를 예약했던 매장이었다. 하하하하.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대개 아스날 팬들일 것이고 평소 볼 수 없는 곳들을 둘러본 만큼 흥분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날 상품을 파는 곳에 데려다 놓으니 죄다 물건을 고를 수 밖에. 내 기억에 그대로 나가버린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둘러보기라도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의 감상은 ‘정말 별의 별 것을 판다.’였다. 아스날 유니폼 레플리카를 필두로 티셔츠, 남방, 점퍼, 바지 같은 옷도 팔고 있고 아스날 젤리, 술 같은 먹을 것도 팔고 있고 나이트 가운, 샤워 타월, 젖병(...), 목도리, 장갑, 양말과 같은 물건 들도 팔고 게임도 팔고 책도 팔고 포스터도 팔고 그림도 팔고 달력도 팔고 머그컵도 팔고 술잔도 팔고...아무튼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있다.


 나는 물건 전부를 지르고 싶은 지름신의 부름에 휩싸여 있다가 정신 차리고 휴대폰 장식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골랐다. 휴대폰 장식은 한국까지 따라와서 한동안 잘 썼지만 티셔츠는 다시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곧 할 수 있을 것이다. 젠장.


 그렇게 물건을 지르고 나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갈까? 어제 구장투어만 생각한 탓에 이제 어디로 갈지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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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Voyage/Europa 2013. 1. 18. 01:00

005. 영국식 감자튀김

 그렇게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기다리다가 내 배낭을 찾아 등에 짊어지고 지하철을 찾아갔다.

참고로 지하철은 유럽 쪽에선 Underground, Tube, Metro 등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표지판엔 Underground라고 가장 많이 하는 거 같더라. Tube나 Metro란 말은 그리 많이 못 들어본 것 같고...

Subway란 표현은 그쪽에선 잘 안쓴다고...


 아무튼 표를 끊고(여행 할꺼면 일 단위로 정액권이 있으니 그걸 끊어쓰면 좋을 것 같다.)

민박에서 알려준 지하철 역을 찾았다. 내가 탈 노선은 피카딜리 라인이고 목적지는 아마 매너하우스역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지하철 보다 다소 좁고 낡아보이는 전철을 훨씬 더 낡고 좁고 지저분해 보이는 역을 통해 타고 이동한다. 중간에 지상으로 다니는 노선도 있었는데 건물들을 보니 옛날에 지은 것처럼 낡아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뭐라고 해야할까, 처음에 지었다가 여기 좀 고치고 저기 좀 늘리고 하면서 변해온 모습이 보이는 건물들...


 우리나라는 발전한 시기가 짧아서 그런지, 재개발을 너무 화끈하게 해대서 그런지 옛 건물 찾기가 좀 어렵다면

여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이는 건물들 모두 100년씩은 너끈히 된듯한 포쓰.


 아무튼 역에 내려서 다소 헤매다가(부연하자면 제대로 가다가 돌아나왔다 다시 간) 민박집을 찾았다.

평소 한국에선 안쓰던 방식, 몇번 가 몇번집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처음 해보니 좀 헷갈리더라.

거기다가 민박집이라 그런지 다른 보통 집과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아무튼 민박에 들어가서 내가 제대로 예약했었고 찾아왔는지 확인했다.

별 문제없이 확인이 끝나고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엔 이층침대가 몇 개 놓여있었고 그 중 하나를 내가 쓰는 거다.

빨래 있냐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막 왔는데 빨래가 있을리가 있나. 없다고 했다.

간단하게 짐을 묶어두고 침대 위에 앉았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정도 되어있었다.


 여행을 시작해서 드디어 유럽땅에 발을 딛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사실 공항 도착할 때 그런 감개가 들어야했겠지만 너무 긴장해있어서. 하하하하.



 근데 배가 좀 고프다. 뭐라도 먹을까 했는데 저녁은 따로 없단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으라는데 그땐

'이왕 유럽까지 민박집에 있는 라면 끓여먹기도 뭣하고...'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는 소리지.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피쉬앤칩스를 파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해서 한 번 먹어보려고 밖에 나섰다. 아직 덜 어둡기도 하고 길도 잃을 것 같진 않았다.

여긴 해가 밤 10시쯤 되어야 슬금슬금진다고 한다.


 암튼 가게까지 갔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랑 지나가다 우연찮게 말 한두마디 오간거 외에는 외국인과 말 한마디 해본 적도 없던 차라 정말 긴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보니 작은 가게엔 한두명인가가 자기 먹을 것 먹고 있었고 덩치 좋은 백인 아저씨가 열심히 뭔가 튀기고 있었다.


'피쉬앤칩스 팔아요?'

'피쉬는 다 떨어졌는데'

'....(잠시 당황) 그럼 미트앤칩스(그 옆에 있던 건데 생선튀김대신 고기 구운 조각)는 팔아요?'

'그것도 없는데'


 지금은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고 내 목소리가 그 때 얼마나 기어들어갔을까 상상하니 웃음만 나오지만

그땐....아저씨가 잘 안들리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얼굴을 들이미는게 얼마나 사람 압박되게 했었는지.

그래서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가고 아저씨도 그러니 슬슬 진짜로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낄낄.


'그럼 저거(이제 메뉴 말도 못하는군. 이번엔 닭튀김이다) 주세요.'

'XXXXXX 많이?(당시 못 알아들었었다)'

'(많은게 좋겠지) 예'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 잠시 기다리니 아저씨가 다 되었다고 준다. 잽싸게 받아쥐어서 자리에 갖다놓고 내용물을 보았다.


그 때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내 머리 절반만한 그릇에 닭튀김 조각 서너개 얹어져있고 나머지는 죄다 감자튀김으로 채워져있는게 아닌가.

것도 소금도 케챱도 마요도 머스타드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 둘만 덜렁.


 일단 하나 집어먹어보았다.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감자튀김처럼 짭짤하게 양념이 되어있길 기도하며. 내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맛을 그렇게 간절히 바래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


 ......예상하셨던대로다. 그냥 생감자를 썰어 바로 튀겨 내놓은 것이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뭐 찍어먹을꺼라도 있냐고 물어보고 사던가 얻던가 했으면 될 일 아니냐'


 지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그 땐 정말 그 말을 꺼낼 생각도 못할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별 수 있나. 퍼먹어야지.

미리 사둔 스프라이트 한 캔에 기대어가며 그 닭튀김과 감자튀김을 죄다 먹었다.

입 속이 닝글닝글해야 할텐데 닝글닝글한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퍽퍽했다. 덤으로 뜨겁기도 했다.

대충 해브 어 나이스데이라고 씨부리고 밖으로 나서는데 내 어깨가 그때 얼마나 쳐져있었을까.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은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고 난감했을까.

아마 그날 저녁 펍에서 어리버리하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다가 지가 주문한 양념 하나도 안되어있는 수북히 싸인 감자튀김을 말없이 퍼먹고 가던 동양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지 않았을까 싶다...낄낄...아...ㅜ.ㅜ


 치명적 닝닝함에 바로 옆에 있던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두 캔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입에 모두 부었다. 아...



 아무튼 그런 일을 겪고 숙소로 돌아와서 자기엔 좀 이르고 나가기엔 좀 늦고 심심해서 주방 겸 거실에 가봤다.

거기서 주인되는 분과 거기 오래 계신 분, 주인 친척되는 학생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 나갔다 왔던 사람도 한 명 들어왔다.


 그래서 여행 처음이냐, 얼마나 있을 예정이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갔다 온 사람이 스탠포드 브릿지를 다녀왔는데 내일은 크레이븐 코티지에 갈지 화이트 하트레인에 갈지 고민중이라는 거다.

유럽축구에 관심없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각각 첼시, 풀럼과 토트넘의 홈구장 이름이다.


 당시 열성적인 아스날팬이었던-지금은 냉담자 쯤 된다- 타자로서는 귀가 쫑긋해지는 이야기. 혹시 아스날 홈구장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의 약간 어이없어해 하는 한마디.


"여기 오면서 지나쳐오지 않았었어?"

"예?"

"오면서 아스날이라고 역 있었잖아. 그 역인데."

"!!!!!!"


 피카딜리 라인 노선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아스날 - 핀즈버리 파크 - 매너 하우스  로 역이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아스날 역이 축구팀 아스날의 홈이 있는 곳이었던 거다.

그때 내 심정은 '헐...'


 그런 관계로 내 내일 일정은 일단 아스날 홈구장 투어로 급결정되었다.

나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아스날 홈구장부터 가봐야 하는거다.


 첼시 홈구장 다녀온 사람 이야기로는 경기장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투어 같은게 있다고 한다.

몇시부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잘 모르겠는데 좀 늦게 여는 거 같았다고 한다.

정확히 모르니 일단 아침에 일찍 가보기로 한다. 좀 더 수다를 떨다가 비행기 안에서 피곤했던 관계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은 감자튀김으로 기억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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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Voyage/Europa 2013. 1. 18. 00:50

004. 300

이 영화 포스터가 왜 나올까요 하하하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영어와 일본어로 한 번씩 교대로 나와주는 긴 안내방송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며 하필이면 정 가운데 자리가 잡혔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 쉬고 있었다. 근데 이제와서 뭐 어쩌랴...

나리타 공항에서 항공권을 티켓으로 바꾸면서 그렇게 Aisle Seat을 말했건만..웃으면서 고개 끄덕일 때 알아봤어야 했나.


 아무튼 안내방송이 끝나고 이거저거 뒤적거려보는데

좌석에 작은 모니터가 붙어있고 좌석에 붙어있는 일종의 콘솔을 통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간단한 게임이나 회화공부를 할 수 있게 해놓은 모양이다. 다소 신기했던건 그 콘솔이 꼭 게임기 컨트롤러같이 생겼다는 것 정도...


 이거저거 만져 보다가 영화목록을 살펴봤다.

영화는 기억하기론 300, 미녀는 괴로워, 도쿄타워, 유브갓메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영화 보는게 가장 시간이 잘 갈 것 같았다. 거기에 밥도 두 끼 주니까 밥 먹고 자고 하면 시간은 그럭저럭 갈꺼라고 예상했다. 뭐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를 뭐부터 볼까 하다가 4편 다 본적 없는 거긴 한데

미녀는 괴로워는 외국 여행 와서 한국영화 굳이 봐야겠나 싶어 패스

도쿄타워는 말도 일본어인데 하다못해 영어자막도 지원 안해줘서 패스

유브갓메일은 한국어 더빙까지 되어있지만 엄청 옛날 영화라 그냥 패스

남은게 300이었다.


 300을 봤다. 러닝타임 116분...2시간 정도 된다.

잘 보고나니 목이 마르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에 나가 음료수 한 캔 꺼내서 마셨다.

근데 원래는 스튜디어스에게 말하고 갖다주는걸 기다려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보니까 다들 가운데가서 냉장고 열고 맘대로 집어가길래 나도 그랬다. 근데 원래 그래도 되는건가?


 간단하게 다리도 좀 풀고 다시 들어가서 내려서 해야할 일이나 그런걸 새삼스레 다시 점검하고 하다보니까 밥시간이 되었다.

비프 올 치킨이라고 물어보길래 비프라고 대답했다.


그렇더니 준거


 몇입 먹어보고 나서 맛은....맛은....음, 치킨 시킬껄 그랬나 생각했었다.

옆에서 먹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치킨은 약간 양식 스타일이고 비프는 일식 스타일인 모양이다.

구성은 쯔유로 추정되는 누들소스에 찍어먹는 국수, 간단한 샐러드, 얇게 썬 소고기를 올린 덮밥, 후식으로 푸딩...

솔직히 맛은 상기한 바와 같지만 뭐 그래도 신기한 맛에 맛있게 먹었다.


 주위를 보니 두그릇 먹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냥 안그랬다. 음, 치킨도 한 번 달라고 해볼껄 그랬나? 아니, 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러면 승무원이 굶는 경우도 있다더라.


 그것보다 옆에 앉은 일본인 아저씨(희한하게 좌우가 일본인이었다. 아저씨 한 명이랑 청년 한 명)가

밥을 먹을때 쯔업츄업 소리를 내면서 먹는게 좀 신경쓰였다. 근데 뭐 그냥 참고 넘겨야지 별 수 있는가.

지나갈 때 다리도 잘 비켜 주시는데 말이다. 그게 제일 고마웠다.


 또 300을 봤다. 다시 봐도 괜찮다.

또 살짝 목도 마르고 심심해서 나가서 이번엔 맥주 한 캔 마신다. 화장실 갔다 왔다. 간단히 다리를 또 풀었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3~4시간 잠들었다.


 자다가 잠에서 깼다. 주위 사람 모두 잔다. 이제 나가기도 어렵다.

또 300을 본다. 한 두번 보다가 또 잠든다.


 일어나보니 다행히 옆에 사람도 일어나 있다. 밖에 나가서 음료수와 과자 하나 집어먹고 화장실 들렀다 다리를 푼다.

다시 앉아서 또 300을 본다.


 또 본다. 서너시간 있으면 다음 식사가 나온다. 살다살다 서너시간 후의 식사를 기다려보긴 또 처음이다.

또 300을 본다. 비행기는 한참 시베리아 서쪽을 날고 있다.


 300을 두어번 보고 나니 밥이 나온다. 이번엔 메뉴가 선택이 아니라 단일이다.


양식과 일식이 섞인 오묘한 구성


 파스타, 토마토 소스를 얹은 빵, 유부초밥, 삶은 야채, 샐러드로 된 식사였다.

지난번 식사보단 더 괜찮게 먹었다.


 또 300을 본다.....이젠 더이상은 못보겠다.

그냥 비행기 밖에 설치된 카메라로 구름을 보기 시작했다. 괜히 면세품 리스트도 읽어본다.

지금 생각하니 참 이상하다. 그냥 다른 영화라도 볼 껄............왜 300만......

하긴, 머리도 띵하고 안돌아가다보니 아무생각없이 볼 수 있는 300을 멍하니 보고 있었나 보다.


 슬슬 영국에 와가는 모양이다. 구름 사이로 보이던 눈과 황무지가 퍼런 바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간다.


 이제 영국 땅 위에 도착한 모양이다.

막 뭐라뭐라 방송을 하고 카메라에도 슬슬 사람사는 곳들이 보인다.

비행기의 움직임이 커지기 시작한다. 공항에 다가온 모양이다.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했다. 바지런히 나가서 입국수속을 밟는 심사대로 갔다.

보니까 Non-EU와 EU가 구분되어 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유럽은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Non-EU 긴 줄에서 EU쪽 한가한 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입국심사 때 제대로 말 안하면 의심해서 이것저것 물어본다던데

숙소 어디냐고 물어본다는데 내가 예약한 민박집 주소가 어떻게 되더라

뭘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계속 하다가 내 차례가 되어 입국심사대에 섰다..

덩치 좋은 흑인 아저씨가 'Passport, Please'라고 하길래 여권 건네줬다.


 간단히 여권을 확인한 아저씨 왈


'어디서 왔니' '남한' '무슨 목적으로 왔니' '여행' '어디' '런던' '오케이'


 'Have a nice trip'이라고 하면서 여권에 도장 꿍꿍 찍고는 나한테 돌려줬다.

아, 허무해라. 그래도 별 일 없는게 훨씬 다행이지.


 아무튼 이제 짐만 찾으면 공항에서 볼 일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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