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Good Old Arsenal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바로 지하철을 탔다.
왜? 당연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아스날의 홈구장에 가려고.
지하철을 탄지 얼마되지 않아 아스날 역에 내렸다.
조금 허름해보이는 동네-나중에 알았지만 이 지역이 그렇게 부촌은 아니라고 한다. 첼시 홈구장인 스탠포드 브릿지 근처는 부촌이라고 한다.-에 도착해서 친절하게 붙어있는 이정표대로 따라가니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비시즌이니 당연히 매표소는 모두 닫은 상태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구장에 같이 붙어있는 매장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고 한다. 일단 매장부터 찾았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매장을 찾아 길을 걷는데 길거리를 쓸고 있는 청소부는 동양인 계열(중국계 같았다), 매장 안에서 서서하는 일, 그러니까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매장 안에 관리하고 그러는 직원은 흑인이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 그러니까 매장 안쪽에서 데스크 워크를 하고 있는 직원은 백인이다. 그냥 우연의 일치인거 같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아무튼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뭘 도와드릴까요 물어보길래 투어 때문에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직원이 투어 관련 담당직원이 있는 책상으로 데려다줬다. 담당직원은 요금은 15파운드이고 오후 1시에 남문 입구로 오라고 했다. 당시 15파운드가 아니라 100파운드라도 지를 태세였던 나는 바로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때 예약한 시간은 오전 10시다. 요컨대 3시간 동안 이역만리에서 멍때리게 생긴 판이다. 그리고 아스날 홈구장에 간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주위에 뭐가 있는지 어떤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난감했다.
일단 구장 밖이나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겉모습이다.
아스날 팬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건설해서 쓰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을 홈구장을 삼고있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26,000석~28,000석을 가진 구장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지 좀 되기도 했고 관객을 더 많이 받아야겠다 싶어서 새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은 것이다. 아랍쪽 항공사인 에미레이츠 항공에서 구장 스폰서를 해줘서 최소한 2022년까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릴 것이다. 그 이후론 애쉬버튼 그로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겠지.
구장을 한바퀴 돌고나서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를 가보기로 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기념이 될만한 조그마한 부분만 남겨두고 철거되었으며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서 분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있다.
이제 뭘하나 고민하다가 아까 구장을 한바퀴 돌때 뭔가 다른 건물이 있었던걸 떠올리고 찾아가보았다. 찾아가보니 구단 박물관이라고 한다. 원래 입장료가 5, 6파운드 정도 하는데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개장 시간을 보니 11시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다시 구장 주위를 돌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스낵바가 있어서 뭐 파나 봤는데 츄러스, 햄버거....뭐 어디가나 비슷한 거 같았다. 물론 스낵바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누가 이럴때 장사하겠나.
잠시 후 11시가 되고 구단 박물관에 들어갔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1913년에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최초로 벌어졌던 경기.
아스날의 옛날 모습을 담은 사진
과거 아스날의 유니폼과 당시의 축구장비들
아까 것보다 최근의 유니폼
하이버리 구장의 조감도로 추정된다.
아스날의 주축이었던 앙리와 비에이라가 있었던 프랑스 국대가 월드컵 우승했을때 관련 물품
그렇다고 한다.
아스날이 타온 트로피의 일부. 아 챔스 트로피가 없어....엉엉
아스날의 각종 최초 기록들
아스날의 하이버리 스타디움 마지막 경기 알림판. 위의 센터스팟 잔디가 이 경기의 잔디였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의 센터스팟(센터라인 가운데에 있는 경기가 시작되는 지점)
과거 아스날의 로고. 아까 위에 유니폼 중에 이 로고가 박힌 유니폼이 있다.
이렇게 당시로선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그렇게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슬슬 점심을 먹어도 될 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겪은 아찔한 감자튀김의 추억때문에 뭘 먹을까 고민했다. 일단 밖에 나가보니 케밥집이 있길래 거기로 가봤다. 그땐 케밥이 뭔지 잘 몰랐다. 아무튼 먹을꺼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케밥을 사서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아서 먹었다.
내 유럽여행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케밥. 언젠가 이 케밥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 이번껀 좀 괜찮네 야채도 많고 고기도 있고 탄수화물도 있고...그러면서 제법 큰 케밥을 먹었다. 그리고 공원을 조금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시계가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쪽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문에 가보니 대충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주 어려보이는 꼬마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 대부분이 얘들 사이즈의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한 클럽을 좋아하고 찾아오고 각종 물건들도 사고 경기를 보러 오고 그런다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그 클럽을,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일이다.
가이드가 나눠주는 투어 신청자임을 증명하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VIP를 위한 관중석, 구장 현관, 선수들의 샤워실과 안마실, 드레싱 룸, 경기 중 대기 선수들이 앉는 벤치, 프레스 룸 등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설명했다.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각종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설명도 자세히 해주고 사진 찍을 시간도 충분히 주는 등 팬 서비스에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당연한 걸 못하는 곳이 오죽 많아야지.
구장 정문의 로고
구장 내부 모습. 잔디 좋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자리였던거 같다.
높으신 분들 자리에서 찍은 경기장 사진
선수들이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다는게 신기했다.
2004년 10월 28일에 묻은 아스날 타임캡슐이라고 한다.
아스날이 세운 리그 49경기 무패기록. 아마 맨유가 깼었던거 같은데. 루니가...
이땐 진짜 잘나갔는데...
선수들 락커룸 바로 앞에 있는 공간. 선수들을 위한 관리 공간(씻고 마사지 받고...)이라고 한다.
라커룸이다. 가이드가 거기가 선수들이 앉는 자리니 앉아서 안내를 들어보라고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저 사진을 찍고 있을때 아마 앙리의 바르샤 이적이 결정되었던걸로 안다. 아아.......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오는 통로다.
그 통로에서 경기장으로 나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경기장의 모습이다.
그라운드 안에서 찍은 사진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잔디 안엔 못들어가게 되어있다.
살짝 손만 뻗어 잔디를 만져보니 엄청 부드러웠다.
프레스룸과 그 바깥의 모습이다. 기자들을 위한 책상도 한 켠에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축구 전술의 변천사 중 일부를 알 수 있는 사진 한 장
이렇게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가이드가 출구라면서 안내한 곳은 가보니 아까 투어를 예약했던 매장이었다. 하하하하.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대개 아스날 팬들일 것이고 평소 볼 수 없는 곳들을 둘러본 만큼 흥분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날 상품을 파는 곳에 데려다 놓으니 죄다 물건을 고를 수 밖에. 내 기억에 그대로 나가버린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둘러보기라도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의 감상은 ‘정말 별의 별 것을 판다.’였다. 아스날 유니폼 레플리카를 필두로 티셔츠, 남방, 점퍼, 바지 같은 옷도 팔고 있고 아스날 젤리, 술 같은 먹을 것도 팔고 있고 나이트 가운, 샤워 타월, 젖병(...), 목도리, 장갑, 양말과 같은 물건 들도 팔고 게임도 팔고 책도 팔고 포스터도 팔고 그림도 팔고 달력도 팔고 머그컵도 팔고 술잔도 팔고...아무튼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있다.
나는 물건 전부를 지르고 싶은 지름신의 부름에 휩싸여 있다가 정신 차리고 휴대폰 장식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골랐다. 휴대폰 장식은 한국까지 따라와서 한동안 잘 썼지만 티셔츠는 다시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곧 할 수 있을 것이다. 젠장.
그렇게 물건을 지르고 나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갈까? 어제 구장투어만 생각한 탓에 이제 어디로 갈지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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