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먹은 면요리 세가지

 일전에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었었다.

흑돼지 구이, 전복 뚝배기, 오분자기 뚝배기, 옥돔구이, 전복죽 등등등...적어놓고 보니 꽤 잘먹고 다녔네? 하하.


 아무튼 이런저런 음식들을 먹었고 대개 맛있었지만 오늘 포스팅에선 면요리를 적어보려고 한다.

각자 조그마한 사연이 있고 맛도 인상적이었던 음식들이다.



  1. 고기국수


 아마 제주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제주도에 고기국수가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 중 하나라길래 어디서 파는데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골목길로 들어갔는데(이거 위험한 습관인데...하긴 우리나라 안에서 도시에서 대낮이었으니깐) 조그마한 가게가 하나 있는데 불도 다 꺼져있고 문도 닫혀있는데 무슨 생각인지 문을 밀어보니 밀리길래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주인 아주머니가 선잠을 주무시고 있었다가 인기척에 깨셨다. 고기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고기국수는 보시다시피 돼지가 주가 되고 배추를 함께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만 다음 위에 김, 파, 양념을 얹어서 말아먹는 국수다. 돼지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할 음식은 아니지만 반대로 고기와 고기의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만한 음식이다. 맛도 진했고.


 그렇게 국수를 먹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여기 언제 온 적 있냐고 하신다. 여행객이니 당연히 그럴리 없고 처음이라고 하자 아주머니가 놀라시면서 여긴 어떻게 왔냐고 하신다. 원래 해 떠있을 때는 가게 문만 열어놓고 불꺼놓고 문닫고 쉬시는지라 단골 아니면 안온다고(그러니까 점심 먹으러 오는 단골들 위해 문은 열어놓는데 이 시간에 장사할 생각은 없으시다는 이야기) 하신다. 글쎄, 나도 왜 불꺼졌는데 문 열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뭐 재미있는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맛있으니 좋은거지 뭐. 그나저나 제주도 어르신들은 이걸 술안주로 자주 드시나보다. 하긴 진한 국물맛이 소주를 부르긴 하더라 하하.



  2. 밀면


 밀면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한국전쟁 동란 통에 부산에서 만들어진것으로 알려진 음식이다. 그러니 제주도의 향토 음식은 아닌거다. 근데 왜 이걸 기억하고 있느냐면 여름에 한참 더울때 이중섭거리 근처에서 신나게 헤매다가 더위를 살짝 먹고 헉헉거리고 있다가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대충 끼니나 때우자 싶어서 들어가서 먹어서 그렇다. 예전 전국일주 때 대구-부산에 가서 밀면은 안먹어보기도 했었고.


 밀면을 그렇게해서 처음 먹어봤는데 가게에 붙은 판떼기에 적힌 글을 보니 냉면 비슷한 맛이겠구나 생각하고 먹어봤는데 보통 우리가 아는 냉면맛과는 또 살짝 다른 맛이었다. 매콤하게 국물 부은 국수하고도 또 살짝 맛이 다르고. 꽤 만족하며 먹었었다. 언제 부산가면 오리지날 밀면을 먹을 기회가 있을까?



  3. 짜장면


 ....아니 제주도에서 짜장면이 왜? 싶은 분도 있을 것 같다. 뭐 사실 맛의 문제라기보단....마라도 가서 먹어서 그렇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Yes or No 특집으로 마라도에 짜장면 먹으러 갔던 특집이 있는데 제주도 온 김에 대한민국 최서남단 유인도인 마라도에도 함 가보고 짜장면도 함 먹으러 가자 해서 갔었다. 내가 무도를 원체 즐겨보는 편이기도 하고.


 뭐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아마 서귀포시에 있는 숙소에서 체류하며 마라도로 갈려고 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날씨가 비가 오거나 파도가 심하면 배가 잘 안뜬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 물먹고 그 다음날도 배 하나 거르고 기다려서 타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도 마라도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매우 맑아서 경치를 잘 구경할 수 있었다.


 각설하고 마라도에 갔는데 뭔 짜장면집이 그렇게 많은지 내심 놀랐다. 예전에 이창명씨가 핸드폰 광고로 '짜장면 시키신 분~~'을 대히트 시킨 이후 짜장면집이 많이 세워졌다고 한다. 메뉴도 짜장면-짬뽕-탕수육 딱 세개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고보니 골프카로 사람들 실어나르는 모양이다. 아무튼 수많은 짜장면집을 두리번거리다가 무한도전에서 유재석-노홍철-정형돈(ㅠㅠ)이 갔던 짜장면집을 찾았다. 내가 점심식사시간보다 한두시간 일찍 간 탓에 짜장면집들은 다 한산했다. 그래서 들어가보니 무한도전에서 무도멤버들이 짜장면 먹은 자리에 표시를 해둔게 아닌가. 속으로 피식웃었지만...아니, 그 자리 찾아서 앉았으니 웃을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자리에 앉아서 짜장면을 주문했다. 보통 짜장면 위에 톳(맞나?)을 좀 무쳐서 얹은게 나왔다. 가격은 동네 중국집 짜장면보다 비쌌고 맛은...음, 솔직히 그저 그랬지만(덜 느끼하긴 하더라) 그래도 맛으로 먹는다기보단 여기와서 이거 먹고간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먹는거라 잘 먹었다. 다 먹고 자리를 나서니 식사시간에 맞춰서 들어온 단체손님들이 짜장면집마다 바글바글했다. 우와 사람 많다...하며 길을 나섰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도 정리해서 포스팅을 하겠지만 문득 면요리가 생각나길래 짧게 포스팅 해보았다.


Bon Voyage/Europa 2013. 1. 18. 22:22

006. Good Old Arsenal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바로 지하철을 탔다.

왜? 당연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아스날의 홈구장에 가려고.


 지하철을 탄지 얼마되지 않아 아스날 역에 내렸다.

조금 허름해보이는 동네-나중에 알았지만 이 지역이 그렇게 부촌은 아니라고 한다. 첼시 홈구장인 스탠포드 브릿지 근처는 부촌이라고 한다.-에 도착해서 친절하게 붙어있는 이정표대로 따라가니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비시즌이니 당연히 매표소는 모두 닫은 상태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축구장에 같이 붙어있는 매장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고 한다. 일단 매장부터 찾았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매장을 찾아 길을 걷는데 길거리를 쓸고 있는 청소부는 동양인 계열(중국계 같았다), 매장 안에서 서서하는 일, 그러니까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매장 안에 관리하고 그러는 직원은 흑인이다. 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 그러니까 매장 안쪽에서 데스크 워크를 하고 있는 직원은 백인이다. 그냥 우연의 일치인거 같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아무튼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뭘 도와드릴까요 물어보길래 투어 때문에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직원이 투어 관련 담당직원이 있는 책상으로 데려다줬다. 담당직원은 요금은 15파운드이고 오후 1시에 남문 입구로 오라고 했다. 당시 15파운드가 아니라 100파운드라도 지를 태세였던 나는 바로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그때 예약한 시간은 오전 10시다. 요컨대 3시간 동안 이역만리에서 멍때리게 생긴 판이다. 그리고 아스날 홈구장에 간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혀서 주위에 뭐가 있는지 어떤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난감했다.


 일단 구장 밖이나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겉모습이다.


 아스날 팬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건설해서 쓰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을 홈구장을 삼고있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26,000석~28,000석을 가진 구장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지 좀 되기도 했고 관객을 더 많이 받아야겠다 싶어서 새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은 것이다. 아랍쪽 항공사인 에미레이츠 항공에서 구장 스폰서를 해줘서 최소한 2022년까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릴 것이다. 그 이후론 애쉬버튼 그로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겠지.


 구장을 한바퀴 돌고나서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를 가보기로 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기념이 될만한 조그마한 부분만 남겨두고 철거되었으며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서 분양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어있다.


 이제 뭘하나 고민하다가 아까 구장을 한바퀴 돌때 뭔가 다른 건물이 있었던걸 떠올리고 찾아가보았다. 찾아가보니 구단 박물관이라고 한다. 원래 입장료가 5, 6파운드 정도 하는데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개장 시간을 보니 11시라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래서 다시 구장 주위를 돌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스낵바가 있어서 뭐 파나 봤는데 츄러스, 햄버거....뭐 어디가나 비슷한 거 같았다. 물론 스낵바는 장사를 하고 있지 않았다. 누가 이럴때 장사하겠나.


 잠시 후 11시가 되고 구단 박물관에 들어갔다. 시간이 시간인만큼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1913년에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최초로 벌어졌던 경기.


아스날의 옛날 모습을 담은 사진


과거 아스날의 유니폼과 당시의 축구장비들


아까 것보다 최근의 유니폼


하이버리 구장의 조감도로 추정된다.


아스날의 주축이었던 앙리와 비에이라가 있었던 프랑스 국대가 월드컵 우승했을때 관련 물품


그렇다고 한다.


아스날이 타온 트로피의 일부. 아 챔스 트로피가 없어....엉엉


아스날의 각종 최초 기록들


아스날의 하이버리 스타디움 마지막 경기 알림판. 위의 센터스팟 잔디가 이 경기의 잔디였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경기의 센터스팟(센터라인 가운데에 있는 경기가 시작되는 지점)


과거 아스날의 로고. 아까 위에 유니폼 중에 이 로고가 박힌 유니폼이 있다.


 이렇게 당시로선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튼 그렇게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니 슬슬 점심을 먹어도 될 시간이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겪은 아찔한 감자튀김의 추억때문에 뭘 먹을까 고민했다. 일단 밖에 나가보니 케밥집이 있길래 거기로 가봤다. 그땐 케밥이 뭔지 잘 몰랐다. 아무튼 먹을꺼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케밥을 사서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아서 먹었다.


내 유럽여행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음식, 케밥. 언젠가 이 케밥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것이다.


 어 이번껀 좀 괜찮네 야채도 많고 고기도 있고 탄수화물도 있고...그러면서 제법 큰 케밥을 먹었다. 그리고 공원을 조금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시계가 1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쪽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문에 가보니 대충 서른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주 어려보이는 꼬마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 대부분이 얘들 사이즈의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한 클럽을 좋아하고 찾아오고 각종 물건들도 사고 경기를 보러 오고 그런다면 나중에 나이를 먹어서도 그 클럽을,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일이다.


 가이드가 나눠주는 투어 신청자임을 증명하는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VIP를 위한 관중석, 구장 현관, 선수들의 샤워실과 안마실, 드레싱 룸, 경기 중 대기 선수들이 앉는 벤치, 프레스 룸 등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설명했다.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각종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설명도 자세히 해주고 사진 찍을 시간도 충분히 주는 등 팬 서비스에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 당연한 걸 못하는 곳이 오죽 많아야지.


구장 정문의 로고




구장 내부 모습. 잔디 좋다.


아마 높으신 분들의 자리였던거 같다. 




높으신 분들 자리에서 찍은 경기장 사진


선수들이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다는게 신기했다.



2004년 10월 28일에 묻은 아스날 타임캡슐이라고 한다.



아스날이 세운 리그 49경기 무패기록. 아마 맨유가 깼었던거 같은데. 루니가...

이땐 진짜 잘나갔는데...





선수들 락커룸 바로 앞에 있는 공간. 선수들을 위한 관리 공간(씻고 마사지 받고...)이라고 한다.






라커룸이다. 가이드가 거기가 선수들이 앉는 자리니 앉아서 안내를 들어보라고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저 사진을 찍고 있을때 아마 앙리의 바르샤 이적이 결정되었던걸로 안다. 아아.......



라커룸에서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오는 통로다.

그 통로에서 경기장으로 나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경기장의 모습이다.













그라운드 안에서 찍은 사진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잔디 안엔 못들어가게 되어있다.

살짝 손만 뻗어 잔디를 만져보니 엄청 부드러웠다.





프레스룸과 그 바깥의 모습이다. 기자들을 위한 책상도 한 켠에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축구 전술의 변천사 중 일부를 알 수 있는 사진 한 장


 이렇게 2시간 가까이 진행된 투어를 마쳤다. 그리고 가이드가 출구라면서 안내한 곳은 가보니 아까 투어를 예약했던 매장이었다. 하하하하. 아스날 구장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은 대개 아스날 팬들일 것이고 평소 볼 수 없는 곳들을 둘러본 만큼 흥분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날 상품을 파는 곳에 데려다 놓으니 죄다 물건을 고를 수 밖에. 내 기억에 그대로 나가버린 사람은 없었다. 최소한 둘러보기라도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의 감상은 ‘정말 별의 별 것을 판다.’였다. 아스날 유니폼 레플리카를 필두로 티셔츠, 남방, 점퍼, 바지 같은 옷도 팔고 있고 아스날 젤리, 술 같은 먹을 것도 팔고 있고 나이트 가운, 샤워 타월, 젖병(...), 목도리, 장갑, 양말과 같은 물건 들도 팔고 게임도 팔고 책도 팔고 포스터도 팔고 그림도 팔고 달력도 팔고 머그컵도 팔고 술잔도 팔고...아무튼 정말 별의 별 것을 다 팔고 있다.


 나는 물건 전부를 지르고 싶은 지름신의 부름에 휩싸여 있다가 정신 차리고 휴대폰 장식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골랐다. 휴대폰 장식은 한국까지 따라와서 한동안 잘 썼지만 티셔츠는 다시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곧 할 수 있을 것이다. 젠장.


 그렇게 물건을 지르고 나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갈까? 어제 구장투어만 생각한 탓에 이제 어디로 갈지는 생각도 안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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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Voyage/Europa 2013. 1. 18. 01:00

005. 영국식 감자튀김

 그렇게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기다리다가 내 배낭을 찾아 등에 짊어지고 지하철을 찾아갔다.

참고로 지하철은 유럽 쪽에선 Underground, Tube, Metro 등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표지판엔 Underground라고 가장 많이 하는 거 같더라. Tube나 Metro란 말은 그리 많이 못 들어본 것 같고...

Subway란 표현은 그쪽에선 잘 안쓴다고...


 아무튼 표를 끊고(여행 할꺼면 일 단위로 정액권이 있으니 그걸 끊어쓰면 좋을 것 같다.)

민박에서 알려준 지하철 역을 찾았다. 내가 탈 노선은 피카딜리 라인이고 목적지는 아마 매너하우스역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지하철 보다 다소 좁고 낡아보이는 전철을 훨씬 더 낡고 좁고 지저분해 보이는 역을 통해 타고 이동한다. 중간에 지상으로 다니는 노선도 있었는데 건물들을 보니 옛날에 지은 것처럼 낡아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뭐라고 해야할까, 처음에 지었다가 여기 좀 고치고 저기 좀 늘리고 하면서 변해온 모습이 보이는 건물들...


 우리나라는 발전한 시기가 짧아서 그런지, 재개발을 너무 화끈하게 해대서 그런지 옛 건물 찾기가 좀 어렵다면

여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이는 건물들 모두 100년씩은 너끈히 된듯한 포쓰.


 아무튼 역에 내려서 다소 헤매다가(부연하자면 제대로 가다가 돌아나왔다 다시 간) 민박집을 찾았다.

평소 한국에선 안쓰던 방식, 몇번 가 몇번집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처음 해보니 좀 헷갈리더라.

거기다가 민박집이라 그런지 다른 보통 집과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아무튼 민박에 들어가서 내가 제대로 예약했었고 찾아왔는지 확인했다.

별 문제없이 확인이 끝나고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엔 이층침대가 몇 개 놓여있었고 그 중 하나를 내가 쓰는 거다.

빨래 있냐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막 왔는데 빨래가 있을리가 있나. 없다고 했다.

간단하게 짐을 묶어두고 침대 위에 앉았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정도 되어있었다.


 여행을 시작해서 드디어 유럽땅에 발을 딛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사실 공항 도착할 때 그런 감개가 들어야했겠지만 너무 긴장해있어서. 하하하하.



 근데 배가 좀 고프다. 뭐라도 먹을까 했는데 저녁은 따로 없단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으라는데 그땐

'이왕 유럽까지 민박집에 있는 라면 끓여먹기도 뭣하고...'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는 소리지.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피쉬앤칩스를 파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해서 한 번 먹어보려고 밖에 나섰다. 아직 덜 어둡기도 하고 길도 잃을 것 같진 않았다.

여긴 해가 밤 10시쯤 되어야 슬금슬금진다고 한다.


 암튼 가게까지 갔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랑 지나가다 우연찮게 말 한두마디 오간거 외에는 외국인과 말 한마디 해본 적도 없던 차라 정말 긴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보니 작은 가게엔 한두명인가가 자기 먹을 것 먹고 있었고 덩치 좋은 백인 아저씨가 열심히 뭔가 튀기고 있었다.


'피쉬앤칩스 팔아요?'

'피쉬는 다 떨어졌는데'

'....(잠시 당황) 그럼 미트앤칩스(그 옆에 있던 건데 생선튀김대신 고기 구운 조각)는 팔아요?'

'그것도 없는데'


 지금은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고 내 목소리가 그 때 얼마나 기어들어갔을까 상상하니 웃음만 나오지만

그땐....아저씨가 잘 안들리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얼굴을 들이미는게 얼마나 사람 압박되게 했었는지.

그래서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가고 아저씨도 그러니 슬슬 진짜로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낄낄.


'그럼 저거(이제 메뉴 말도 못하는군. 이번엔 닭튀김이다) 주세요.'

'XXXXXX 많이?(당시 못 알아들었었다)'

'(많은게 좋겠지) 예'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 잠시 기다리니 아저씨가 다 되었다고 준다. 잽싸게 받아쥐어서 자리에 갖다놓고 내용물을 보았다.


그 때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내 머리 절반만한 그릇에 닭튀김 조각 서너개 얹어져있고 나머지는 죄다 감자튀김으로 채워져있는게 아닌가.

것도 소금도 케챱도 마요도 머스타드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 둘만 덜렁.


 일단 하나 집어먹어보았다.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감자튀김처럼 짭짤하게 양념이 되어있길 기도하며. 내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맛을 그렇게 간절히 바래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


 ......예상하셨던대로다. 그냥 생감자를 썰어 바로 튀겨 내놓은 것이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뭐 찍어먹을꺼라도 있냐고 물어보고 사던가 얻던가 했으면 될 일 아니냐'


 지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그 땐 정말 그 말을 꺼낼 생각도 못할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별 수 있나. 퍼먹어야지.

미리 사둔 스프라이트 한 캔에 기대어가며 그 닭튀김과 감자튀김을 죄다 먹었다.

입 속이 닝글닝글해야 할텐데 닝글닝글한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퍽퍽했다. 덤으로 뜨겁기도 했다.

대충 해브 어 나이스데이라고 씨부리고 밖으로 나서는데 내 어깨가 그때 얼마나 쳐져있었을까.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은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고 난감했을까.

아마 그날 저녁 펍에서 어리버리하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다가 지가 주문한 양념 하나도 안되어있는 수북히 싸인 감자튀김을 말없이 퍼먹고 가던 동양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지 않았을까 싶다...낄낄...아...ㅜ.ㅜ


 치명적 닝닝함에 바로 옆에 있던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두 캔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입에 모두 부었다. 아...



 아무튼 그런 일을 겪고 숙소로 돌아와서 자기엔 좀 이르고 나가기엔 좀 늦고 심심해서 주방 겸 거실에 가봤다.

거기서 주인되는 분과 거기 오래 계신 분, 주인 친척되는 학생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 나갔다 왔던 사람도 한 명 들어왔다.


 그래서 여행 처음이냐, 얼마나 있을 예정이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갔다 온 사람이 스탠포드 브릿지를 다녀왔는데 내일은 크레이븐 코티지에 갈지 화이트 하트레인에 갈지 고민중이라는 거다.

유럽축구에 관심없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각각 첼시, 풀럼과 토트넘의 홈구장 이름이다.


 당시 열성적인 아스날팬이었던-지금은 냉담자 쯤 된다- 타자로서는 귀가 쫑긋해지는 이야기. 혹시 아스날 홈구장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의 약간 어이없어해 하는 한마디.


"여기 오면서 지나쳐오지 않았었어?"

"예?"

"오면서 아스날이라고 역 있었잖아. 그 역인데."

"!!!!!!"


 피카딜리 라인 노선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아스날 - 핀즈버리 파크 - 매너 하우스  로 역이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아스날 역이 축구팀 아스날의 홈이 있는 곳이었던 거다.

그때 내 심정은 '헐...'


 그런 관계로 내 내일 일정은 일단 아스날 홈구장 투어로 급결정되었다.

나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아스날 홈구장부터 가봐야 하는거다.


 첼시 홈구장 다녀온 사람 이야기로는 경기장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투어 같은게 있다고 한다.

몇시부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잘 모르겠는데 좀 늦게 여는 거 같았다고 한다.

정확히 모르니 일단 아침에 일찍 가보기로 한다. 좀 더 수다를 떨다가 비행기 안에서 피곤했던 관계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은 감자튀김으로 기억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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