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Voyage/Europa 2013. 1. 18. 01:00

005. 영국식 감자튀김

 그렇게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기다리다가 내 배낭을 찾아 등에 짊어지고 지하철을 찾아갔다.

참고로 지하철은 유럽 쪽에선 Underground, Tube, Metro 등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표지판엔 Underground라고 가장 많이 하는 거 같더라. Tube나 Metro란 말은 그리 많이 못 들어본 것 같고...

Subway란 표현은 그쪽에선 잘 안쓴다고...


 아무튼 표를 끊고(여행 할꺼면 일 단위로 정액권이 있으니 그걸 끊어쓰면 좋을 것 같다.)

민박에서 알려준 지하철 역을 찾았다. 내가 탈 노선은 피카딜리 라인이고 목적지는 아마 매너하우스역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 지하철 보다 다소 좁고 낡아보이는 전철을 훨씬 더 낡고 좁고 지저분해 보이는 역을 통해 타고 이동한다. 중간에 지상으로 다니는 노선도 있었는데 건물들을 보니 옛날에 지은 것처럼 낡아보이는 건물들이 많다. 뭐라고 해야할까, 처음에 지었다가 여기 좀 고치고 저기 좀 늘리고 하면서 변해온 모습이 보이는 건물들...


 우리나라는 발전한 시기가 짧아서 그런지, 재개발을 너무 화끈하게 해대서 그런지 옛 건물 찾기가 좀 어렵다면

여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이는 건물들 모두 100년씩은 너끈히 된듯한 포쓰.


 아무튼 역에 내려서 다소 헤매다가(부연하자면 제대로 가다가 돌아나왔다 다시 간) 민박집을 찾았다.

평소 한국에선 안쓰던 방식, 몇번 가 몇번집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처음 해보니 좀 헷갈리더라.

거기다가 민박집이라 그런지 다른 보통 집과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아무튼 민박에 들어가서 내가 제대로 예약했었고 찾아왔는지 확인했다.

별 문제없이 확인이 끝나고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엔 이층침대가 몇 개 놓여있었고 그 중 하나를 내가 쓰는 거다.

빨래 있냐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막 왔는데 빨래가 있을리가 있나. 없다고 했다.

간단하게 짐을 묶어두고 침대 위에 앉았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7시 정도 되어있었다.


 여행을 시작해서 드디어 유럽땅에 발을 딛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사실 공항 도착할 때 그런 감개가 들어야했겠지만 너무 긴장해있어서. 하하하하.



 근데 배가 좀 고프다. 뭐라도 먹을까 했는데 저녁은 따로 없단다. 배고프면 라면 끓여먹으라는데 그땐

'이왕 유럽까지 민박집에 있는 라면 끓여먹기도 뭣하고...'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웃기는 소리지.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피쉬앤칩스를 파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해서 한 번 먹어보려고 밖에 나섰다. 아직 덜 어둡기도 하고 길도 잃을 것 같진 않았다.

여긴 해가 밤 10시쯤 되어야 슬금슬금진다고 한다.


 암튼 가게까지 갔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랑 지나가다 우연찮게 말 한두마디 오간거 외에는 외국인과 말 한마디 해본 적도 없던 차라 정말 긴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보니 작은 가게엔 한두명인가가 자기 먹을 것 먹고 있었고 덩치 좋은 백인 아저씨가 열심히 뭔가 튀기고 있었다.


'피쉬앤칩스 팔아요?'

'피쉬는 다 떨어졌는데'

'....(잠시 당황) 그럼 미트앤칩스(그 옆에 있던 건데 생선튀김대신 고기 구운 조각)는 팔아요?'

'그것도 없는데'


 지금은 내 착각이었다고 생각하고 내 목소리가 그 때 얼마나 기어들어갔을까 상상하니 웃음만 나오지만

그땐....아저씨가 잘 안들리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얼굴을 들이미는게 얼마나 사람 압박되게 했었는지.

그래서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가고 아저씨도 그러니 슬슬 진짜로 짜증이 나지 않았을까? 낄낄.


'그럼 저거(이제 메뉴 말도 못하는군. 이번엔 닭튀김이다) 주세요.'

'XXXXXX 많이?(당시 못 알아들었었다)'

'(많은게 좋겠지) 예'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 잠시 기다리니 아저씨가 다 되었다고 준다. 잽싸게 받아쥐어서 자리에 갖다놓고 내용물을 보았다.


그 때 사진을 찍었어야 했다


  내 머리 절반만한 그릇에 닭튀김 조각 서너개 얹어져있고 나머지는 죄다 감자튀김으로 채워져있는게 아닌가.

것도 소금도 케챱도 마요도 머스타드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 둘만 덜렁.


 일단 하나 집어먹어보았다.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감자튀김처럼 짭짤하게 양념이 되어있길 기도하며. 내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맛을 그렇게 간절히 바래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


 ......예상하셨던대로다. 그냥 생감자를 썰어 바로 튀겨 내놓은 것이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실 것이다.

'뭐 찍어먹을꺼라도 있냐고 물어보고 사던가 얻던가 했으면 될 일 아니냐'


 지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그 땐 정말 그 말을 꺼낼 생각도 못할만큼 위축되어 있었다.


 별 수 있나. 퍼먹어야지.

미리 사둔 스프라이트 한 캔에 기대어가며 그 닭튀김과 감자튀김을 죄다 먹었다.

입 속이 닝글닝글해야 할텐데 닝글닝글한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퍽퍽했다. 덤으로 뜨겁기도 했다.

대충 해브 어 나이스데이라고 씨부리고 밖으로 나서는데 내 어깨가 그때 얼마나 쳐져있었을까.


 그리고 그 가게 주인은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고 난감했을까.

아마 그날 저녁 펍에서 어리버리하니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다가 지가 주문한 양념 하나도 안되어있는 수북히 싸인 감자튀김을 말없이 퍼먹고 가던 동양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지 않았을까 싶다...낄낄...아...ㅜ.ㅜ


 치명적 닝닝함에 바로 옆에 있던 슈퍼에 가서 음료수를 두 캔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입에 모두 부었다. 아...



 아무튼 그런 일을 겪고 숙소로 돌아와서 자기엔 좀 이르고 나가기엔 좀 늦고 심심해서 주방 겸 거실에 가봤다.

거기서 주인되는 분과 거기 오래 계신 분, 주인 친척되는 학생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 나갔다 왔던 사람도 한 명 들어왔다.


 그래서 여행 처음이냐, 얼마나 있을 예정이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갔다 온 사람이 스탠포드 브릿지를 다녀왔는데 내일은 크레이븐 코티지에 갈지 화이트 하트레인에 갈지 고민중이라는 거다.

유럽축구에 관심없는 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각각 첼시, 풀럼과 토트넘의 홈구장 이름이다.


 당시 열성적인 아스날팬이었던-지금은 냉담자 쯤 된다- 타자로서는 귀가 쫑긋해지는 이야기. 혹시 아스날 홈구장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의 약간 어이없어해 하는 한마디.


"여기 오면서 지나쳐오지 않았었어?"

"예?"

"오면서 아스날이라고 역 있었잖아. 그 역인데."

"!!!!!!"


 피카딜리 라인 노선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아스날 - 핀즈버리 파크 - 매너 하우스  로 역이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아스날 역이 축구팀 아스날의 홈이 있는 곳이었던 거다.

그때 내 심정은 '헐...'


 그런 관계로 내 내일 일정은 일단 아스날 홈구장 투어로 급결정되었다.

나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아스날 홈구장부터 가봐야 하는거다.


 첼시 홈구장 다녀온 사람 이야기로는 경기장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투어 같은게 있다고 한다.

몇시부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잘 모르겠는데 좀 늦게 여는 거 같았다고 한다.

정확히 모르니 일단 아침에 일찍 가보기로 한다. 좀 더 수다를 떨다가 비행기 안에서 피곤했던 관계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여행 첫날은 감자튀김으로 기억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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